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정태희입니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평가, 피드백, 전략 수립에 대한 의뢰가 유난히 많이 들어와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평가하고 계획하는 일을 하다 보면 늘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평가하고 계획하는 그 '무엇'이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요즘은 "왜 하는가"를 묻기에 앞서, 그 '왜'가 가리키는 대상인 '무엇'을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알고 실행하며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 일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일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 주일에 만난 버스 기사님이 떠올랐습니다.
740번 버스에서 만난 '무엇'
서빙고동 교회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주차도 어렵고 운동도 할 겸 차를 두고 740번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의 작은 정성이 오래 남았습니다.
교통카드를 찍는데 기사님이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셔서 살짝 머쓱했습니다. 공사 구간에 들어서자 "차가 조금 흔들리니 손잡이 꼭 잡으세요" 하고 미리 알려주셨고, 내릴 때는 자동문을 열어주며 운전석에서 "안녕히 가세요" 하고 크게 인사해주셨습니다. 덕분에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경험이 저로 하여금 기분 좋은 주말을 시작하게 해주었습니다.
문득 둘러보니 이 버스는 일반 좌석을 과감히 줄이고, 그 자리에 휠체어 이용객과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넉넉히 마련해두었더라고요. 정해진 노선을 똑같이 도는 평범한 일을, 이 버스회사와 기사님은 완전히 다르게 하고 계셨습니다. 이분들에게 '버스 운전'이란 승객을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게 해드리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의 '무엇'을 다르게 정의하자, 같은 노선이 전혀 다른 경험이 된 겁니다.
돌을 깨는 사람, 성전을 짓는 사람
어릴 적부터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먼 나라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래전 유튜브에서 한 강사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그 말을 단번에 이해시켜주었습니다.
석공인 아버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빠는 무슨 일을 해?"라고 묻자, 한 아버지는 "아빠는 그냥 돌 깨는 일을 해"라고 답합니다. 다른 아버지는 똑같이 돌을 깨면서 "아빠는 성전을 짓는 일을 한단다"라고 답합니다. 손에 든 정과 망치는 같은데,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하나로 대답이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저는 나의 일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는지, 나는 내 일의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주, 바쁘게 임하실 과업의 그 '무엇'을 제대로 정의 내리고 일을 하실 준비가 되었나요? 아니면 부딪히는 대로 전진 모드인가요?
이 단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다양한 학계의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먼저 역할의 모호성과 직무 성과의 관계를 분석한 메타분석(Tubre & Collins, 2000, Journal of Management)에서는, 내 역할이 무엇인지 모호할수록 직무 성과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과업과 관계와 의미를 스스로 재구성하는 잡 크래프팅을 다룬 메타분석(Rudolph 외, 2017,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은, 일의 자원과 도전 수준을 스스로 높이는 크래프팅이 업무 몰입, 직무 만족, 성과와 긍정적으로 연결된다고 정리했습니다. 최근에는 포춘(2026.06.23)이 갤럽 조사를 인용해, 미국 근로자 중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분명히 안다'고 답한 비율이 2020년 56%에서 46%로 떨어졌다고 전했습니다. 일의 '무엇'이 흐려지는 시대일수록, 이 정의의 단계가 성과의 차이를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정확히 이 이야기를 다룬 사례가 있습니다. 예일대의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와 미시간대의 제인 더튼이 2001년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미국 한 대형 병원의 청소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더니, 일부는 자신을 '청소부'가 아니라 '치유 팀의 일원'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기분을 살펴 병실 분위기를 바꾸고, 찾아오는 보호자가 없는 환자를 일부러 더 챙기고, 복도에 걸린 그림의 배치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이들은 직무기술서에 적힌 일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의 경계와 의미를 스스로 다시 그리고 있었던 겁니다. 두 학자는 이를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업무라도 과업과 관계와 의미를 내가 능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잡 크래프팅이 유행처럼 번졌지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유행어가 아니라, 직업정신을 갖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기초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관리 이전에, 일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니까요.
AI 시대의 난감함
그런데 이 잡 크래프팅이 AI가 일상에 들어온 요즘에는 조금 다른 숙제를 던집니다. 저희 리박스컨설팅도 이 문제로 참 난감합니다. 저희는 나름 최고의 프리미엄 인사 컨설팅 회사를 지향해왔지만, 단순 반복 업무가 거의 자동화되면서 인력의 30%가량을 줄이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니어 컨설턴트의 자리가 애매해졌습니다. 인간만 할 수 있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업무를 맡거나, 아주 고도화된 업무를 맡거나, 둘 중 하나만 남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적당히 배우며 크는' 중간 단계의 자리가 AI에 먼저 흡수되어버린 셈입니다.
게다가 얄궂게도, AI는 경험이 쌓인 숙련자일수록 더 잘 씁니다. 그만큼 다양한 변수를 떠올리고 더 정교한 질문을 던질 줄 알기 때문입니다. AI는 신입의 자리를 줄이면서 동시에 베테랑의 손에서는 더 강력해지는 도구입니다. 이 이중의 간극 앞에서 저 역시 아직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럴 때일수록 자존심보다 의미 쪽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작은 일만 맡고 있나' 하는 자존심의 질문보다, '이 일이 결국 어디로 연결되는가' 하는 의미의 질문을 던지는 편이 낫습니다. 자존심은 비교에서 오지만, 의미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충족되지 않은 필요가 지갑을 연다
세상에서 히트를 치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충족되지 않은 필요(Unmet Needs)'를 건드린 경우가 많습니다. 일의 '무엇'을 정의한다는 것도 결국 내 일이 누구의 어떤 필요를 채우는지 아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마케팅하는 분들이 가장 잘하는 영역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탄 740번 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석을 줄여서라도 휠체어 공간을 넓힌 것은 숫자로 보면 손해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채워주지 않던 필요를 정면으로 건드린 선택이었습니다. 기사님의 친절한 말씀들도 그저 운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소명을 알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승무원 데이비드 홈즈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흘려듣게 되는 그 지루한 안전수칙 안내는, 사실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점이 늘 문제였습니다. 홈즈 씨는 어떻게 하면 승객이 이 안내를 듣고, 보고,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2009년 어느 비행에서 용기를 내어 안전수칙을 랩으로 불렀습니다. 좌석벨트와 비상구 안내까지 필수 내용을 모두 담은 랩이었습니다. 승객들은 박수를 치며 따라 했고,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지금까지도 회자됩니다. 그가 건드린 것은 항공사 모두가 알면서도 방치해온 '아무도 듣지 않는 안전수칙'이라는 필요였고, 그것을 재미로 바꾼 겁니다. 똑같은 업무를 완전히 의미 있는 다른 일로 바꿔놓은 셈이지요.
내 업무의 품격은 내가 호흡을 불어넣을 때 높아진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관광버스 기사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운전하면서, 지나가는 동네의 역사를 들려주셨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빨간 지붕 집이 이 동네 맛집이니 꼭 가보세요, 왼쪽의 하얀 건물은 마당에 1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에요" 하고요. 그런데 그 이후 캐나다에서 그런 기사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 정성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일의 격은 내가 그 일에 얼마나 호흡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높아진다는 것을요.
반대로 말하면, 내가 크래프팅하지 않은 일은 타인과 조직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그 일을 정의하는 과정 없이 그 대가를 당당하게 보상으로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기도 합니다. 성과평가 결과에 버럭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어디에 기여하고 있는지, 어떤 과업을 완결해야 하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집중해야 하는지를 정작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우격다짐으로 좋은 성과 결과를 바랄 수 있을까요.
다행히 올해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상사나 이해관계자에게 내 일의 정의를 알리고, 서로 같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더 나은 연말 결과를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리박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역대 가장 어린 구성원이, 7~8년 차 선배들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맡은 업무는 사실 단순했고, 컨설턴트의 분석력이나 설계 역량에는 아직 못 미쳤습니다. 그런데도 그 연봉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대표인 저의 시간을 아껴주었고, 제가 원하는 것을 저조차 깨닫기 전에 먼저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자기 업무를 '단순 보조'로 정의하지 않고 '대표의 시간과 판단을 지키는 일'로 스스로 재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업무 가치에 한탄하거나 불만을 갖는 대신 오히려, 돌을 깨는 일이 아니라 성전을 짓고 있었던 셈이지요.
지금은 그 친구의 일도 대부분 자동화되었고 역할도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가장 좋은 인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여전히 같은 답을 합니다. 저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그 구성원이, 최고의 보상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최고의 인재라고요.
고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거창한 것을 기대하기보다, 정말 불편한 점을 빠르게 해결해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났을 때 지갑을 열더라고요.
인사 컨설팅을 하면서 적용하고 싶은 점
이번 주에도 평가와 전략 설계 의뢰를 받으며 다시 느꼈습니다.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무엇을 목표로 세울 것인가를 천편일률적으로 정하기 전에, 그 직무와 그 일이 '무엇'인지부터 구성원과 함께 정의하지 않으면 평가도 전략도 겉돈다는 점입니다.
AI 시대에 조직이 놓치기 쉬운 것은 업무의 난이도만 보고 사람의 자리를 재단하는 일입니다. 구성원을 머물게 하고, 성장시키고,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업무의 난이도가 아니라 그 일에 불어넣는 의미와 호흡입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직무를 들여다볼 때도, 그 직무가 얼마나 복잡한지보다 구성원이 그 직무를 어떻게 스스로 재정의하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겠다 다짐합니다. 나는 무엇을 대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인지, 어떤 판단과 재량권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런 정의가 없으면 근본적인 해결점을 만나지 못한 채 서로 이해의 간극만 생기고, 그 간극이 감정의 골로 이어져 몰입도 떨어지고 행복감도 사라집니다. 그러면 크래프팅은 시도조차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함께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1. 나는 단순해 보이는 업무를 맡은 구성원에게, 그 일의 의미를 함께 그려주고 있는가?
2. 우리 조직은 AI가 대체한 자리만 보고, 그 사이 비어버린 성장의 사다리를 놓치고 있지 않은가?
3. 나는 내 일에,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나만의 호흡을 불어넣고 있는가?
오늘 기억하고 싶은 요약
같은 돌을 깨도 누군가는 성전을 짓습니다. 그 차이는 업무의 난이도가 아니라, 내가 그 일에 불어넣는 호흡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 저의 잡 크래프팅
이번 주에는 모 대기업 경영진 대상 조직관리 리더십 2일 과정, 모 OTT 회사 팀의 내년 전략 워크숍, 그리고 코칭 두 건이 잡혀 있습니다.
리더십 과정에서는 이 회사의 주요 본부들이 조직 변화의 큰 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내용을 한 땀 한 땀 살펴보겠습니다. 전략 워크숍에서는 구성원과 리더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퍼실리테이션에 힘쓰겠습니다. 코칭에서는 리더들의 맥락을 다시 한번 공부해서 최고의 모멘텀을 선물해드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여러분은 이번 주, 내 일의 '무엇'을 어떻게 정의하고, 석공의 마음으로 어떤 크래프팅을 준비하시나요?
정태희 드림
jadechung@rebox.asia
SNS. jadechung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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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럼이 참고한 사실 자료*
- Amy Wrzesniewski & Jane E. Dutton, "Crafting a Job: Revisioning Employees as Active Crafters of Their Work",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001)
- Tubre, T. C. & Collins, J. M., "Jackson and Schuler (1985) Revisited: A Meta-Analysis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Role Ambiguity, Role Conflict, and Job Performance", Journal of Management (2000)
- Rudolph, C. W., Katz, I. M., Lavigne, K. N. & Zacher, H., "Job crafting: A meta-analysis of relationships with individual differences, job characteristics, and work outcomes",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2017)
- Fortune (The Conversation 기고, Bob Batchelor), 갤럽 조사 인용 "Worker engagement just hit a decade low" 관련 기사 (2026.06.23)
- 사우스웨스트 항공 승무원 데이비드 홈즈의 안전수칙 랩 영상 (2009, 온라인 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