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셔요. 드디어 한가위 추석이 다가오네요.
2026년이 유독 빠른 시간 여행 같은데, 저만 그런 걸까요? 추석과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천국에 계신 아빠 엄마에 대한 후회의 자리가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만큼은 특별한 시간 설계를 해보려 합니다.
몇 달 전 아주 가까운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농담처럼 그 친구 엄마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급한 일이 있어 엄마에게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가 작은 말다툼이 났는데, 알고 보니 그 어머님이 주식을 하고 계셨다며, "주식 잘하는 우리 엄마, 참 모던하고 대단하시다"고 웃으며 다 같이 어머님의 감각과 재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천국에 계시는 저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그 화기애애한 대화에 부럽기도, 행복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후를 만끽하며 사시던 멋진 친구 어머님은 몇일 전 안타까운 비보로 제게 돌아왔습니다. 밤낚시를 가신 아버님을 데리러 나가시던 시골길 산책 중에 달려오던 트럭에 치여,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저도 모르게 청천벽력 같은 슬픔과 허망함이 밀려왔습니다.
저의 엄마는 15년 전 난소암으로, 아빠는 3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탤런트 김자옥 님처럼 곱고, 날아다니는 나비와 활짝 피어난 개나리에도 소녀 같은 미소와 표현을 하시던 엄마는, 저와 하루 한 번씩 전화하는 생애 가장 가까웠던 친구 사이였습니다. 반면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셨던 아빠는 일관성의 끝판왕이셨습니다. 늘 새벽 5시 기상, 두 시간 신문 읽기,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 방학이면 꼬박꼬박 쓰게 하시던 일기, 그리고 필수 참여 가족여행. 식사 때는 국은 오른쪽 밥은 왼쪽, 꼭 어른이 한 술 뜬 뒤에 밥을 먹으라던 그 잔소리들, 9시에는 취침. 그때는 참 듣기 싫었는데 이제는 아빠 잔소리가 추운 겨울 반가운 온기처럼 반가울 것 같습니다. 늘 직장생활 하는 제게 "겸손해라" 하셨던 그 말씀도, 그때는 그렇게 싫더니 이제야 왜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이 모든 게 지금은 다 추억이 되어 다시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에 대한 찐 애정을 보여주셨던 아빠 엄마는 그랬습니다.
아빠가 하나님 곁으로 가신 방법은 우연이라 보기에는 더 기가 막힙니다. 폐암 말기로 집에서 여생을 보내며 투병하시던 아빠는, 유독 엄마와 자주 가셨던 충청도의 한 교사 연수원 숲속이 그리우셨나 봅니다. 2023년 7월 26일 돌아가시는 날 아침 혼자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 손수 운전을 해 충청도로 향하셨습니다. 전날도 힘없지만 호탕한 통화를 나눴고, 저는 여느 때처럼 출근해 일하느라 아무도 몰랐다가 결국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상황은 아빠가 아픈 몸으로 고속도로에서 시속 40킬로로 달리며 엄마와의 추억 장소로 향하신 것입니다.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저속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엄마와의 추억 장소로 가신 것 같습니다. 사실, 아빠가 남지 않은 시간을 아셨던 것인지, 무슨 마음이셨는지는 하나님만 아실 뿐,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결국 신고까지 당하셨다는데, 그럼에도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엄마와 함께했던 그곳으로 가겠다고 우기셨고, 상황을 파악한 경찰들도 결국 아빠 편이 되어 앞뒤로 두 대의 경찰차 호위를 받으며 목적지로 향하셨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여경의 부축을 받으며 신발을 벗었는데, 결국 방에 들어서자마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되셨고, 저희가 이동하는 중에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말릴까 봐, 아빠는 몰래 홀로 떠나 엄마와의 추억의 장소에서 마지막을 준비하셨던 것이지요.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그렇게 아빠의 로맨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그리워하며 두 분의 추억 장소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사이좋은 두 분은 이런 모습으로 생을 끝냈습니다.
후회는 늘 같은 자리에 있다
제 인생 책 중 하나인,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자기 앞의 생』에도, 죽음 앞에서 사람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주인공 모모라는 이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70년대 대학가요제의 김만준씨가 노래한 "모모"의 영감을 준 인물로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늙은 유대인 여성 로자 아주머니의 손에서 자랍니다. 로자 아주머니는 늙고 병들어가면서 '죽지 않게만 보살펴주는 병원'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모는 그녀가 정신을 잃어갈 때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지하의 작은 방에 숨겨 세상의 눈으로부터 지키며 끝까지 곁을 지킵니다. 아주머니가 결국 숨을 거둔 뒤에도, 모모는 그 사실을 며칠이나 알리지 않고 짙은 화장과 향수로 감추며 곁에 머무릅니다. 무서움을 무릅쓰고 그녀 곁을 지킨 건, 자신의 두려움보다 그녀가 홀로 남겨지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혼자 죽지 않게 하는 일이라는 걸, 이 소설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다가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30년지기 두 친구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지내다가,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뭔가 뚝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순간, 죽어가는 친구의 곁을 지키는 은중에게 상연은 고통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 외롭지 않다는 말을 건넵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문득, 아빠 엄마가 하늘에 계신 지금의 저는 가끔 이 세상 속에서 홀로 괴리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 한 명의 유무가, 삶과 죽음 앞에서 이렇게나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또 한 번 배웁니다.
나의 생의 마감에는 누가 나를 지켜줄지, 조심스레 떠올려봅니다. 삶의 끝에서 진짜 필요한 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는 사람 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따스한 사람 냄새를, 이번 추석에는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사람 냄새를 이야기하다 보니 연초 트렌드 분석 내용이 생각납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조차 신입사원 기초 교육에 '눈 마주치기'와 '무례함 방지' 교육을 작년부터 의무교육으로 다시 넣는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2024년 미국 기업 대상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60% 이상이 직원들에게 눈 마주치는 법, 정중하게 대화하는 법 같은 기본 예절 교육을 시킬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무례함을 다루는 교육이 이렇게까지 다시 뜬다는 게 저에게는 참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옵니다. 요즘처럼 피 터지는 업무 현장에서조차 자칫 간과될 수 있는 소위 '인간 향기 기술', 그 사람의 향기를 되찾으려는 신선한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존중과 사랑은 원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장 먼저 탄생되었을 텐데, 우리는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이런 고귀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잊거나 잃어버린 걸까요. 저도 이왕이면 냉가슴에 뾰족한 사람보다 온기에 따스한 사람들이 더 좋고, 더 돕고 싶더라고요.
경험이 나를 만든다
사람은 살아온 경험 덩어리가 인격이고, 일상 속에서 의사결정의 큰 몫을 차지하더라고요. 흔히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들의 집안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부모님이 참 많은 '인정'을 주고 자랐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이좋은 부부는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멋져"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내에게 존중받을 일관성과 든든한 기둥이었겠지요. 그런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여전히 곱고 예뻐"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결혼 초심을 잊지 않고, 저의 엄마처럼 사랑스런 가족의 중심이 되었겠죠. 그러면 서로의 갱년기를 더 수월하게 넘긴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최근 코칭을 하면서, 과업은 뛰어난데 관계에서 유독 힘들어하는 분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분이 코치인 저에게, 리더십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과 비례한다는 걸 코칭 과정 끝에 깨달았다며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남을 대하기 전에 먼저 판단부터 해버리고, 저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시도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하며 사는 리더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선택과 말이 주변에 어떤 영향과 분위기를 이끄는지 말입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은, 인간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먼저 존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만큼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저를 비롯해 한 명도 없으니, 결국 문제는 먼저 타인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 '나'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끄는 삶과 내가 이끌려가는 삶은 전혀 다른데, 사람과의 관계마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이끌리다 보니,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뒷전으로 밀려난 삶을 살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를 해치는 말이 나오거나 서로를 무시해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일을 잘하고 건강한 판단을 하려면, 내면에 사랑과 우정과 신뢰 같은 내면 연료가 채워져야 하는 거죠. 이제 내 것, 내 삶, 내 가족부터 제대로 챙겨야, 그 단단해진 내적 근육으로 몰아치는 업무의 풍파와 뾰족한 성과도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타임박스라는 이름의 몰입
일론 머스크는 하루를 20분 단위의 '타임박스'로 쪼개어 산다고 합니다. 그 20분 동안 청소하시는 분을 만나든, 국가 투자 전략을 논의하러 온 대통령을 만나든, 갓 입사한 인턴을 만나든, 주어진 그 시간에 엄청난 몰입을 쏟는다고 합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 짧은 만남의 결과를 위해 그만큼 철저히 준비해 온다고 하고요.
추석, 한가위는 정말 많은 것이 풍성한 명절입니다. 날씨도 충만하고 하늘도 높고, 음식도 가장 맛있는 오색찬란한 때입니다. 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챙겨보려고 합니다.
저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는 모멘텀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숙고해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즐기고 있는 이 좋은 순간이, 바로 나의 생을 마감할 때 떠오르는 그 명장면일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저를 포함해 이 명장면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분들을 이 순간만큼은 더 멋지게 대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안 되는 일도 결국 되게 만드는 힘은, 가족이라는 사랑이 주는 초인적인 내면의 연료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아빠, 엄마처럼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 저도 이제 좀 쑥스러워도 어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남편과 사위에게 "당신 멋져"라고 말해보고, 딸과 아들에게는 더 많이 인정해주려 합니다. 언젠가 제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달려온 삶이 허망하지 않도록, 저는 오늘부터 조금씩 '마음 저축은행'을 채워보려 합니다. 이 글을 쓰며 이야기를 해준 제 옆 동료는, 점점 노쇠해지시는 엄마를 위해 당장 크루즈 예약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더라고요.
최근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이 올해 5월 모교인 예일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도 이 이야기와 꼭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그냥 흘러가는 시계 위의 시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 신이 지정한 운명 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졸업생들에게 긴급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정작 자신도 예일 재학 시절 성적은 초라했고, 큰 병까지 얻어 앞날이 불안하기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첫 소설을 내기까지 12년이, 『파친코』를 완성하기까지는 거의 30년이 걸렸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뉴욕 코리아타운의 작은 가게에서 일하느라, 정작 1990년 그의 졸업식에는 오지 못했던 부모님이, 36년이 지난 이 자리에는 함께 와주셨다는 이야기로 연설을 마쳤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배신하는 적이 아니라, 결국 우리 편이 되어주는 스승이라는 그 말이, 저의 이번 추석과도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번 추석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받기 위해, 존중받기 위해 더더욱 "가족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다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루 24시간 중 단 20분만이라도 온전히 누군가에게 — 형제에게, 부모님에게,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 몰입해보는 시도가 진짜 멋진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의 타임박스는, 지금 누구에게 맞춰져 있나요? 추석 타임박스도, 이제 이끌려 보내지 말자고요. 가장 행복한 명장면의 추석을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리박스컨설팅의 틀을 깨는 인사 컨설팅 시사점
조직도 다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숫자에 쫓기다 보면, 정작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신뢰와 존중 같은 보이지 않는 자산을 놓치게 됩니다. re:Box가 조직진단에서 늘 확인하는 것도 결국 이 지점입니다. 이 조직 안에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숫자 뒤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 나는 언젠가 사라질 것들과,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을 구분하고 있는가?
- 나는 가족과 동료에게, 후회 없이 곁에 있어주고 있는가?
- 우리 조직은 눈에 보이는 성과만큼, 보이지 않는 신뢰에도 시간을 쓰고 있는가?
한 줄 요약: 삶에는 타임박스가 있습니다. 그 시간을 무엇에, 누구에게 쓸지는 결국 우리가 정하는 것입니다. 어서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해 후회의 자리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챙겨보셔요. 해피 추석입니다!
정태희 대표 드림
이 컬럼이 참고한 자료
- Bronnie Ware,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2025.9.12 공개)
- Resume Builder 기업 예절 교육 설문조사 (Fortune, 2024.1.17 보도)
- 일론 머스크의 '타임박싱' 시간 관리 방식 관련 다수 보도
- 이민진, 2026 예일대 클래스 데이(Class Day) 축사 (2026.5.17, "카이로스"와 시간에 관한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