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태희입니다.
제가 읽는 책, 일상, 공부한 내용을 매주 보내드리는데 몇몇 고객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어느새 매주 글을 쓰는 이 시간과 공간의 확보가 책 읽는 시간처럼 저만의 리츄얼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한 주간 어떠셨나요?
이제 저도 의도적인 멈춤을 지나 본격적인 업무 엔진이 켜졌습니다. 2026년 상반기의 정신없던 시간을 돌아보고 현재의 저를 인식하며 하반기의 멋진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 깊어진 만큼, 휴가 이후 출근 첫날은 근사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꿈과 달리 예외 없이 많은 총알들이 정신없이 날아오네요. 이제 다시 근사한 life(삶)에서 치열한 living(생존)을 향해 몸과 마음을 담글 시간인가 봅니다. 😀
한때 저는 180여 개국의 사업을 관리하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인사수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한국인 여성이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과 세계를 누비며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에 승진하여 그 자리까지 올랐다는 이야기가 퍼져, 그 당시는 흔치 않아 자주 미디어 기삿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럽, 미주, 아시아, 동유럽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정말 훌륭한 리더와 동료와 친구들을 만났고, 정말 원 없이 일했고 너무나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그만큼 상상도 못할 괴롭고 치열한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늘 위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눈만 뜨면 승진 소식과 주식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좋은 직장에, 과분할 만큼의 연봉, 적지 않은 조직원을 거느린 자리였는데도 그랬습니다. 아픈 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유 없이 힘들고, 이유 없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 자리의 중심에 정작 제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갑자기 리더가 되었지만 나름 소신껏 리더로서 제 몫을 다한다고 믿었습니다. 구성원을 승진시키고, 월급을 많이 주고, 교육 기회를 많이 보내주는 것 — 그게 최고의 리더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성실했기에 김밥을 시켜 먹으며 제 방에 홀로 남아 쌓인 과업을 쳐냈지만, 구성원들에게는 맛있는 것 사 드시라며 — 스스로 희생한다는 연민과 과감한 리더의 아우라를 상상하며 — 법인카드를 내줬습니다. 예산을 확보해주고, 비싼 교육을 보내주고, 과업이 굴러가게 만드는 것. 이것이 리더로서 제 본분이라 생각했고, 그게 좋은 리더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구성원들에게 필요했던 건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눈을 마주치고 나누는 깊은 대화, 그 사람의 일상 속 어려운 맥락을 서로 연결하고 배려해주는 것, 나와의 시간 속에 타인과 부대끼는 경험이 리더의 격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심리적 화학작용 같은 안온감, 잠깐이라도 알아차려주는 인간적 공감이라는 연료 — 그런 것들은 과업을 쳐내고 나서 "다음에"라며 늘 뒤로 미뤄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시 32세에 이사가 되었습니다. 어린 리더였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사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저는 그렇게 갑작스레 승진해버렸습니다. 제 또래는 늦은 취업준비생이거나 이제 막 입사한 저년차 구성원이었고, 정작 제가 관리해야 할 구성원들은 저보다 열 살 넘게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내외를 막론하고 같은 직급의 동료들조차 저에게는 아버지뻘, 이모뻘, 삼촌뻘이었습니다. 불안하기도 했고 일만 잘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고, 남들도 저만큼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과업을 밀어붙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았기에, 저는 그게 맞는 방식인 줄 알았습니다. 성과는 늘 최고였고, 스스로 이상적인 직원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저의 리더들은 예외 없이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업의 리더였지, 사람의 리더는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딸이 다섯 살, 아들이 세 살이던 때였습니다. 그 아이들 이름과 그때의 제 나이를 붙인 숫자가 한동안 제 개인적인 비밀번호였을 정도로, 저는 그 시절을 어렵게 붙잡고 힘겹게 버텼습니다. "이 시기만 기억하면 앞으로 못 할 게 없다" — 그게 그때 제 각오였습니다. 이 이야기로 리더 워크숍을 하면 위로가 돼서인지, 다들 맞장구치며 좋아해 주시어 인기 있는 코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의 시대는 끝났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오랫동안 리더십의 절대 명제였습니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리더가 된다는 믿음, 그리고 그 위에서 파생된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실패하라"는 문화까지 — 이 모든 건 리더가 혼자 판을 짜고, 혼자 결정하는 구조를 전제로 합니다. 저처럼 굳이 싫은 소리를 할 필요 없이, 내가 직접 해버리면 원하는 결과를 더 빨리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결국 혼자 다 책임지는 구조 말입니다. 게다가 구성원을 보호하고 위한다는 착각까지 단단히 념으로 무장되었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했던 저 자체가 굉장한 오만덩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 짊어진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저의 말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말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높은 리더는 오히려 조직의 혁신을 이끌지 못합니다. 확신이 강할수록 다른 시선이 들어올 틈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진짜 필요한 건 반대입니다 — 나의 취약함과 나약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그 틈으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러면 저의 나약함이 들키고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경영학 세계에서는 바로 '클랜 문화'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렇게 연결된다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저에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며 나눕니다.
클랜, 그 어원이 말해주는 것
'클랜(clan)'이라는 단어는 스코틀랜드 게일어 'clann'에서 왔습니다. '자녀',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 'planta', 즉 '새싹'과 뿌리를 같이합니다. 클랜은 원래 성과나 계약으로 묶인 집단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클랜 문화, 또는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이 요즘 다시 레트로하게 슬슬 회자되는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 모릅니다.
조직문화에서 말하는 이 '클랜 문화'도 이 어원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조직문화 연구자 킴 캐머런과 로버트 퀸이 제시한 '경쟁가치 프레임워크(Competing Values Framework)'에서, 클랜 문화는 규정과 통제로 움직이는 위계 문화나, 경쟁과 성과로 움직이는 마켓 문화와 대비됩니다(Cameron & Quinn, 『Diagnosing and Changing Organizational Culture』, 1999). 클랜 문화의 리더는 지시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돌보고 함께 자라는 '부모'나 '멘토'에 가깝습니다. 조직을 계약 관계가 아니라 한 뿌리에서 나온 가족처럼 대하는 것, 그것이 클랜 문화의 본질입니다.
심리적 안전감, 그 정의가 바뀌었다
여러분은 이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릴 적 저는 심리적 안전감을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따스하고 잘 웃는 리더, 무조건적으로 저를 지지해주는 그런 리더 곁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정의를 내리니 불친절한 리더는 두려워지고, 과잉 공감과 과잉 친절이라는 가면 뒤에서 리더 스스로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일하랴 세대차이나는 아랫사람 눈치, 상사 눈치 맞추랴 하다가, 결국 아무도 리더가 되고 싶지않은 '리더 포비아' 같은 단어까지 등장하는 게 당연한 듯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내리는 결론은 조금 다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결국, 내가 맡은 과업이 도전적이고 어려울 때 "이 리더는 서슴없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이라고 스스로 정의합니다. 웃는 얼굴이 아니라, 어려운 순간에 곁에 있어 줄 것이라는 마음의 값. 그게 진짜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저만의 용어로 정의를 내리고 나니, 구성원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제 행동이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다고 느끼며 서서히 동조되어 가는 게 보였습니다.
내가 조직 중심에 서있다는 것은 강력한 원칙과 나의 취약함을 가지고 팀과 함께 공동의 문제 해결을 풀어나가는 경험을 익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이 개념을 학계에 처음 정립했고, 2018년 펴낸 책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정말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제가 주변 리더들에게 종종 이 책을 선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다른 의견을 내도 괜찮다고 느끼는 조직이야말로 진짜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걸, 이 책만큼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짚어주는 자료를 아직 못 만났습니다.
최근 연구가 확인해주는 것
제 생각의 흐름과 관찰을 확인해보기 위해 리서치를 해보았습니다. 2026년 국제경영 학술지 International Business Review에 실린 18개국 비교 연구는 다국적 기업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조직문화 유형과 심리적 안전감 사이의 관계를 정밀하게 검증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클랜 문화를 강조하는 조직이 위계 문화를 강조하는 조직보다 구성원의 심리적 안전감이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 효과를 만드는 핵심 매개변수는 다름 아닌 '경영진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 신뢰는 바로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라기보다, '내 과업의 문제 해결을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입니다.
이 연구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이 효과의 크기가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사회의 거버넌스 수준 — 원칙과 공정성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 — 이 '경영진 신뢰가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그 경로의 강도를 조절했습니다. 제도가 든든하게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조직일수록, 결국 사람들은 제도보다 리더 개인을 더 크게 신뢰의 근거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법인카드나 예산 같은 제도적 지원만으로는 신뢰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너 나 믿지?" 같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심리적 안전감 바탕의 신뢰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의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랭귀싱이란 무엇인가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제가 한창 HR 공부에 몰두하던 시절, 유독 자주 마주쳤던 단어입니다. 결국 지나고 보니, 앞서 말씀드린 그 시절 제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랭귀싱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힘들고, 이유 없이 행복하지 않았던 그 시기, 그때는 이름조차 붙일 줄 몰랐습니다. 제가 겪었던 그 일터에서의 무기력함을, 요즘은 '랭귀싱(languishing, /ˈlæŋɡwɪʃɪŋ/)'이라 부릅니다.
이 개념을 처음 학술적으로 정의한 사람은 사회학자 코리 키스(Corey Keyes)입니다. 반갑게도 그가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이 개념을 다시 짚었습니다(LearningWell Magazine, 2026.1). 정신건강을 "우울증이 없다 = 건강하다"는 이분법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 인생의 한쪽 끝에는 충만(fulfillment), 즉 flourishing(번성)이 있고, 반대쪽 끝에는 depression(우울)이 있으며, 랭귀싱은 바로 그 중간 지대에 있습니다. 임상적 장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지내는 상태도 아닌 — "무기력하게 버티는" 상태입니다. 오늘도 무기력하게 버티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 개념을 제가 처음 알게 된 건 2021년입니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한국에서도 한창 화제였던 시절, 제가 유독 리더십에 대하여 몰두해서 공부하던 때, 그가 뉴욕타임스에 쓴 글 "There's a Name for the Blah You're Feeling: It's Called Languishing"이 눈에 띄었습니다. 팬데믹 시기 많은 사람이 느끼던 "딱히 아픈 데는 없는데 그렇다고 괜찮지도 않은" 그 느낌에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그랜트는 이걸 "정신건강의 방치된 중간 자식(neglected middle child of mental health)"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랭귀싱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일상의 무기력, 공허함, 정체된 느낌 — "그냥 하루하루 흘러가는" 감각. 동기와 집중력, 기쁨이 흐릿해집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기능합니다. 결근하지 않고, 성과도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직이 가장 놓치기 쉬운 상태입니다 —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HR 입장에서 이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번아웃이나 우울증은 결근·이직·생산성 지표에 신호가 잡히지만, 랭귀싱은 데이터에 잘 안 걸립니다. 사람은 계속 출근하고 일은 하는데, 창의성과 주도성, 몰입은 서서히 마모되는 '조용한 소진'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히 기능하지만 속에서는 의미와 몰입이 서서히 마모되는 상태, 결국 가짜노동의 시조가 되는 무기력 상태 — 그게 랭귀싱입니다. 조용히 인간으로서 죽어가는 현상이지요.
올해 발표된 한 전국 단위 조사는 이 눈에 안 보이던 문제를 숫자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미국 직장인의 61%가 랭귀싱 상태였고, 이들 중 34%가 향후 1년 내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했습니다(일리노이대 Gies경영대, 2026년 워크플레이스 웰빙 리포트). 같은 조사에서 자율성과 지지가 모두 높은 팀은 구성원의 68%가 잘 지낸다고 답했지만, 둘 다 낮은 팀에서는 단 10%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걸, 이 숫자들이 말해줍니다.
랭귀싱을 막는 것은 결국 연결이다
저는 그때 과업의 중심에는 있었지만, 제 삶의 중심에는 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이끌던 구성원들 역시 비슷한 랭귀싱을 겪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법인카드는 있었지만, 과업을 핑계로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시간과 깊은 대화의 시간은 없었으니까요. 누구보다 따스함을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그 당시 저는 그게 사치라고 여기며 과업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모른 채 계속 달려가는 모습이었고 그러한 의미와 방향성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글이나 교육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일찍 나의 업무의 가치와 타인과 관계 연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삶의 가치를 먼저 멈춰서 정의 내리고 달리는 것이 그냥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았을 텐데요.
랭귀싱을 막는 것은 복지나 예산이 아닙니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그 틈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 — 그것이 클랜(가족, 연대) 문화이고, 그것이 랭귀싱을 막는 가장 실천적인 방법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평소엔 무심하다가, 가끔 죄책감에 못 이겨 과잉 친절해지는 —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리더의 행동은 그 자체로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구성원은 그 갑작스러운 친절을 배려가 아니라 가식이라 부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늘 과업을 관계보다 먼저 보면, 과업은 잘 해낼지 몰라도 '결과만 좇는 야망 찬 리더'로 낙인찍히고, 의도와 상관없이 존경은 받지 못합니다. 리더의 격은 사람을 관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관리하는 데 있습니다.
리박스컨설팅의 틀을 깨는 인사 컨설팅 시사점
re:BOX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더 이상 지식으로 컨설팅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깨닫는 모든 여정이 곧 교육 커리큘럼이 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리팸(re:BOX Family)이 갖고 있는 지식으로 컨설팅하는 게 아니라, 리팸이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컨설팅한다 — 이것이 re:BOX를 만들 때 세운 원칙입니다. 글로벌 무대를 돌며 제가 몸으로 겪었던 위염과 랭귀싱이 없었다면, 이 원칙도 없었을 겁니다.
re:BOX가 조직진단에서 KPI나 제도 설계보다 더 자주 마주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조직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진짜로 행복한가"라는 질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예산을 갖춰도, 구성원들이 서로의 일상을 알아차려주는 관계가 없다면 그 조직은 랭귀싱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요즘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보면, 저희가 가장 먼저 대표님들의 회의 방식과 피드백 패턴뿐 아니라 구성원 간 정서적 근접성을 함께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리더십 교육 역시 '더 많이 아는 리더'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낼 줄 알고 그 취약함으로 사람을 잇는 리더를 키우는 데 초점을 둡니다. 결국 조직의 문화는 제도가 아니라, 리더가 매일 누구와 눈을 마주치는가에서 시작됩니다.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 나는 구성원에게 자원을 내주는 리더인가, 눈을 마주치는 리더인가?: 예산과 지원만으로는 신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 나는 내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가?: 자기 확신이 높을수록 오히려 혁신이 들어올 틈이 좁아진다.
- 우리 구성원은 어려운 과업 앞에서 "이 리더는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가?: 그 확신의 유무가 진짜 심리적 안전감의 척도다.
한 줄 요약
랭귀싱을 막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연결이다. 리더의 격은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다. 법인카드를 주지 마시고, 대신 여러분 안에 숨겨둔 진짜 비싼 마음을 줘보세요.
이 글이, 지금 이유 없이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그 사람 곁의 리더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정태희 드림
이 컬럼이 참고한 자료
Corey Keyes, languishing 개념 (LearningWell Magazine 인터뷰, 2026.1); Adam Grant, "There's a Name for the Blah You're Feeling: It's Called Languishing" (New York Times, 2021)
Cameron & Quinn, 『Diagnosing and Changing Organizational Culture』(1999) — 경쟁가치 프레임워크(Competing Values Framework), 클랜/위계/애드호크라시/마켓 조직문화 이론
Amy Edmondson,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개념 정립;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2018)
Dheer, Ratan J.S. et al., "Impact of organizational culture on employee psychological safety perception: The pivotal role of trust in top management across 18 societies" (International Business Review, 2026)
일리노이대 Gies경영대, "Workplace Well-Being Report 2026" (2026.2, 전국 2,000명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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