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잘 보내셨나요? 정태희입니다.
휴가철, 저도 마침내 캐리어를 꺼냈습니다. 지도 위에 가족과 함께 걸을 여정을 하나씩 짚어봅니다. 김해, 순천, 고창, 완도, 제주, 그리고 여수. 지도 위의 점들을 선으로 잇는 것만으로도, 옆에서 함께 설레하는 가족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심장이 뛰더라고요. 역시 여행은 떠나기 전이 제일 설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삶의 색다른 경험이 감사함과 소중함에 대한 건강한 마음작용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여행지에 도착해서보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기 직전 캐리어를 싸는 지금이 더 기쁘고 행복할까요. 정작 목적지에 닿으면 이 설렘은 어느새 잦아들고, 오히려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 다시 그 벅찬 마음이 찾아옵니다. 도착이 아니라 도착 직전이, 목적지가 아니라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그 순간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느끼는 행복은 어떤 호르몬에 해당하는 걸까? 매일매일 일상에 조금만 더 자고 싶어 늘 미루고 싶지만, 그럼에도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칙칙함을 개운함으로 바꾸는 운동을 통해 채워지는 엔도르핀,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 따스한 동료를 통해 채워지는 안온한 관계 감정의 옥시토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이나 사우나를 통해 힐링과 멈춤으로 채워지는 세로토닌 —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우리 일상은 주로 직장에서 과업을 성취했을 때 나오는 호르몬 — 도파민 — 하나로만 치우치기 쉽게 짜여 있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내고, 다음 과업으로 넘어가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일기장에 과업 목록을 만들고 이를 완성할 때마다 채워지는 체크박스로도 작은 도파민이 흐릅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 때 캐리어를 싸며 느끼는 이 행복은 그것과는 결이 전혀 다릅니다. 도파민 하나로는 설명이 안 되는, 더 복합적인 감정인 거죠. 저도 알지만 삶에 이러한 소위, 감정 호르몬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뇌과학에서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복합적 행복(complex well-being)'을 이야기합니다. 여행이든 일이든, 우리 인간은 한 가지 호르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기대감을 만드는 짜릿한 도파민입니다. 여행에서는 캐리어를 싸며 "올해 제주 바다는 어떤 색일까" 상상하는 그 순간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는 기대했던 프로젝트를 맡거나 간만에 좋아하는 고객이 요청한 과업 목표를 향해 동기부여되어 달리기 전에도 똑같이 분비됩니다. 문제는 이 도파민 하나만 쫓을 때입니다. 여행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여행의 설렘이 빠르게 사그라지듯, 성과 하나만 보고 달리는 조직도 목표를 이룬 직후 허무함과 소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다음은 사람과 사람 간 유대감을 만드는 옥시토신입니다. 여행에서는 사랑하는 가족과 "어디 가서 뭐 먹지", "바다부터 보러 가자"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순간 이 호르몬은 은은하고 충만하게 우리 마음속을 채워 줍니다. 일터에서는 동료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작은 감사를 표현하며, 어려운 일에 함께 배려하고 도움 주고 나눌 때 채워집니다. 이 옥시토신이 도파민을 감싸 안아야 기대감이 불안하지 않고 편안해지더라고요. 특히, 저에게는 일상에 아주 중요한 호르몬이 옥시토신입니다. 구성원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고객사의 감사 피드백은 기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저에게, 특히 월급날이 다가올 때 사장으로서 힘을 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거든요.
여행이든 일이든, 혼자 짊어진 기대는 위태롭고 오히려 함께 나눈 기대는 정말로 든든합니다.
마지막은 평온을 주는 세로토닌, 그리고 땀 흘린 뒤의 개운함을 주는 엔도르핀입니다. 여행에서는 너무나 넓고 평온하고 아름다운 순천만 습지와 여수 밤바다의 섬들을 향한 일몰 광경을 보며 고요함을 느낄 때 세로토닌이 나온 것 같습니다. 고창 상하목장 양떼를 바라볼 때나 제주 오름을 걸으며 흘리는 땀방울도 저의 엔도르핀을 채워주었습니다. 실제로 운동할 때도 엔도르핀이 분비되는데, 저는 사실 기본적으로 운동을 참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절대 빠지지 않고 꾸역꾸역 하는 이유는, 걷거나 뛰고 난 뒤 흘리는 꾸덕한 젖은 땀 냄새를 맡으면 몸은 지쳐도 마음은 오히려 개운해지는 바로 그 기분 때문입니다. 일터에서는 온전히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나 공간, 그 자유감이 세로토닌을, 몰입해서 일을 해낸 뒤의 후련함과 뿌듯한 피로감이 엔도르핀을 채워줍니다. 이 둘이 빠지면, 여행도 일도 도파민만 남은 채 쉽게 방전됩니다.
결국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건 도파민 하나가 아니라, 이 세 가지가 함께 채워지는 순간인 듯합니다. 여행 앞에서든 일터에서든, 이 원리는 똑같이 작동합니다.
직장에도 똑같은 조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성과와 보상이라는 도파민 하나만 쫓는 조직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부러집니다. 반면 동료 간의 신뢰와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으로 옥시토신을, 적절한 휴식의 지원으로 세로토닌을 함께 지원받는 조직은 실패해도 금세 털고 일어섭니다. 이게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입니다.
회복탄력성을 뜻하는 단어 'resilience'는 라틴어로 '다시(re-)'와 '뛰어오르다(salire)', 영어로 '평온, 침묵(silience)'가 합쳐진 말입니다. 침묵 속에서 온전히 나를 비워낼 때, 충격에도 거뜬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진짜 강인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외부 충격에 끄떡없이 튕겨 돌아오는 것, 그것이 진짜 강인함이고, 그 힘은 결국 나만의 내적 근육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복탄력성은 의지력을 쥐어짜서 만드는 게 아니라, 잘 채워진 호르몬의 잔고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여행에서 이제 호르몬까지 생각하다가 내 생각이 어떠한가 궁금해서 호기심에 찾아보았습니다. 글로벌 웰니스 인스티튜트가 최근 소개한 맥킨지 헬스 인스티튜트의 연구는, 웰빙을 리더십과 성과관리, 조직설계 안에 통합적으로 녹여낸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생산성이 20~25% 더 높고, 번아웃으로 인한 비용도 유의미하게 줄었다고 밝혔습니다(Global Wellness Institute, 2026.4.7).
또한 최근 스프링헬스가 짚은 2026년 정신건강 트렌드 중 하나는 '조용한 번아웃(quiet burnout)'입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몰입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속으로 이미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가짜노동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 이 증세는 결근이나 불만 같은 뚜렷한 신호가 없어서 오히려 더 놓치기 쉽다는 경고입니다(Spring Health, 2026.5.13). 도파민만 있고 옥시토신, 세로토닌, 엔도르핀이 빠진 조직에서 정확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회복탄력성을 충전하러 떠나는 길
김해의 첫 공기부터 순천과 고창의 푸르름, 완도와 제주의 바다, 그리고 여수의 마지막 밤까지.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떠나온 이번 안식월은, 일상에서 방전된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엔도르핀을 채워 회복탄력성을 다시 충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도파민이 일터로 나아갈 용기를 준다면, 옥시토신과 세로토닌, 엔도르핀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을 줍니다.
리박스컨설팅의 틀을 깨는 인사 컨설팅 시사점
앞으로 조직 진단에서 성과 지표 못지않게 리더의 이런 균형도 함께 눈여겨보고자 합니다. 도파민형 조직은 성과와 경쟁, 단기 목표에만 몰두하는 조직으로 숫자는 좋아 보여도 작은 위기에 쉽게 흔들립니다. 반면 성과와 함께 동료 간 신뢰, 휴식, 성장의 경험이 고루 설계된 조직은 실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력한 내적근육이 존재합니다. 리박스가 성과 지표뿐 아니라 구성원 간 신뢰와 협업 패턴을 함께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리더십 교육 역시 성과를 밀어붙이는 법이 아니라, 이 호르몬의 균형을 조직 안에 설계하는 법을 함께 다뤄야겠습니다.
성수동 re:BOX 사무실에 오시면 2층에 're:Silence'라는 공간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기로 약속된 침묵의 공간입니다. 도파민으로 채워진 하루 속에서 잠깐이라도 세로토닌을 채울 수 있는 자리 하나가, 조직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조용히 지탱합니다.
다만 이 세 가지 호르몬을 채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걷기가 엔도르핀을 채우는 길이고, 누군가에게는 독서가 세로토닌을 채우는 길입니다. 나에게 맞는 행복의 조합, 즉 '나만의 행복 프레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 — 그것이 회복탄력성을 설계하는 첫걸음입니다.
여러분도 시간 내시어 성수동 리스페이스에서 저와 커피 한 잔 어떠세요?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 우리 조직은 성과라는 도파민만 좇고 있지 않은가?: 동료 간 신뢰와 휴식이 함께 설계되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 우리 팀에 조용한 번아웃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가?: 결근이나 불만이 없다고 괜찮은 게 아니다.
- 나는, 그리고 우리 조직은 회복탄력성을 의지력으로 쥐어짜고 있지 않은가?: 회복탄력성은 잘 채워진 관계와 휴식의 잔고에서 나온다.
- 나는 나만의 행복 프레임(나에게 맞는 도파민·옥시토신·세로토닌·엔도르핀의 조합)을 알고 있는가?: 이걸 모르면 채워야 할 것도 모른 채 소진된다.
한 줄 요약: 회복탄력성은 억지 의지력이 아니라, 성과(도파민)와 신뢰(옥시토신), 휴식과 개운함(세로토닌·엔도르핀)이 함께 채워진 잔고에서 나옵니다.
지금 당신의 일상과 일터는 어떤 호르몬으로 채워져 있나요? 이번 달, 사랑하는 이들과 낯선 곳으로 떠나는 작은 상상을 한번 시작해보세요. 그 상상만으로도 이미 회복탄력성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서서히 하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과업관리에 앞서 '나' 관리부터 마무리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치타처럼 급가속을 위한 멋진 정지로 충만한 휴식을 가지며, 명확한 하반기 흐름의 방향전환 전략도 잘 세워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응원합니다.
정태희 드림
이 컬럼이 참고한 자료
Global Wellness Institute, "Workplace Wellbeing Initiative Trends for 2026" (2026.4.7, McKinsey Health Institute 연구 인용)
Spring Health, "8 Mental Health Trends for 2026 and What They Mean for Your Workplace" (2026.5.13, '조용한 번아웃(quiet burnout)'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