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잘 보내셨나요? 정태희입니다.
저는 책을 참 좋아합니다. 스트레스가 차오를 때 제가 진짜로 멈추는 방법은 좋아하는 작가나 알고 싶은 분야의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생각을 씹고 또 씹어 먹다 보면, 놀라울 정도의 아이디어와 시원한 마음의 경지에 가끔 이르곤 합니다.
이번 주는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몇 번이나 릴케의 깊은 질문과 심오한 숙고력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릴케의 질문은 여전히 신선했습니다. 진짜 질문은 깊은 생각의 끝에서 나오고, 수많은 고민과 문제를 향해 파고드는 노력의 흔적과 비례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인에게 답을 구하지 말고 질문 그 자체를 살아보라고 말합니다.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것들을 성급히 해결하려 하지 말고, 낯선 언어로 쓰인 방 안에 갇힌 것처럼 그 질문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답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리더십과 겹쳐 읽으면 묘하게 정확합니다. 과거에는 정보와 지식이 서로 단절되어 있었기에, "다 안다"는 확신으로 무장한 똑똑하고 많이 아는 리더가 이끄는 방식이 충분히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AI의 지능을 따라잡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지식과 정보를 연결 짓는 능력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분해하고 통찰하여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 지금 이 시대의 리더는 답을 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삶과 일상의 본질을 향한 숙고 없이 즉각적인 정답과 성과만 좇는 리더는, 당장은 빨라 보여도 결국 얕은 곳에서 흔들립니다. AI조차도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질문으로는 원하는 답을 얻기 힘든 시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취임하며 조직 전체에 던진 질문이 정확히 이 지점이었습니다. 그는 "다 안다(know-it-all)"는 문화를 "다 배운다(learn-it-all)"는 문화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그 하나의 질문이 이후 회사의 실제 성과 궤적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성과를 포기하고 배움을 택한 게 아니라, 겸손한 배움의 태도가 곧 더 나은 성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릴케의 시선을 가진 리더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 성과와, 호기심을 품은 배움의 여정을 서로 다른 방향이 아니라 같은 길 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리더.
질문에서 시작할 때, 비로소 리더가 된다
이번 주 6시간 퍼실리테이션을 이끈 워크숍에서 저는 이 변화를 실제 현장에서 목격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다 안다"는 확신으로 조직을 이끌어온 리더들이었지만, 진지한 토론과 배움의 기회를 거치며 놀랍게도 이미 충분히 성공한 이들 사이에서 "내가 틀렸다, 그러니 도와달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K리더십이 뜨려나 봅니다. 얼마나 멋진 리더들이 많이 계신지 모릅니다. 이건 리더십의 약화가 아니라 재정의입니다. 다 아는 사람에서 질문하는 사람으로, 답을 주는 사람에서 답을 함께 찾는 사람으로 — 스스로 그 전환을 택한 것입니다. 결국 리더가 곧 문화입니다. 리더가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묻는지가, 그대로 조직의 언어가 됩니다.
이 흐름은 저 혼자만의 관찰이 아닙니다. 최근 포브스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을 미래에도 낡지 않을 유일한 리더십 역량으로 꼽으며,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정체성으로 삼는 순간 호기심조차 자기 권위에 대한 양보처럼 느끼게 되어 결국 '전문성의 정체성 함정'에 빠진다고 짚었습니다. 확신을 갖되 경직되지 않는 것,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 이 지적 겸손이 바로 지금 리더에게 필요한 인지적 유연성입니다.
실증 연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최근 발표된 한 심리학 연구는 지적 겸손이 높은 사람일수록 불편한 피드백에도 더 열려 있다는 사실을 세 차례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자기 이미지를 지키려는 방어기제 대신, 겸손함 자체가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꿔놓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피드백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더 저 자신을 증명하려 들었습니다. 작은 오차 하나에도 빠르게 그것을 감추고 싶었고, "도와줘"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도와줄게"라고 먼저 나서는 오만을 한참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는 리더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적 겸손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흔쾌히 "도와달라"고 말하며 자신의 취약성을 먼저 드러냈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겸손하다고 해서 아무 피드백이나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두루뭉술한 격려보다 더 상세하고 불편할 수 있는 피드백을 스스로 요청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질문하는 리더는 안일한 답이 아니라 정확한 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니코스 사바(Nicos Savva) 교수는 이 변화를 드라마 속 인물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미식축구 감독 출신으로 정작 자신이 전혀 모르는 축구팀을 맡게 된 주인공이, 아는 척으로 버티는 대신 스스로 학생이 되어 주변 사람들 — 심지어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에게까지 — 배우기를 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바 교수는 지금 조직에서 AI에 가장 능숙한 사람이 임원실이 아니라 가장 주니어인 동료인 경우가 많다며, 리더가 먼저 "나는 이걸 모른다,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역멘토링이야말로 2026년 리더에게 필요한 태도라고 강조합니다.
굳이 리더만 바뀌어야 할까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절반의 답입니다. 질문하는 리더가 나타나도, 구성원들이 여전히 "정답만 말해야 한다"는 습관에 갇혀 있다면 그 리더의 질문은 허공에 흩어집니다. 릴케가 말한 질문 속에 사는 삶은 한 사람만의 태도가 아니라, 그 질문을 함께 견뎌줄 수 있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리더가 "내가 틀렸다"고 말할 때, 구성원 역시 "저도 확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그 겸손이 진짜 힘을 갖습니다. 리더의 변화만으로는 반쪽짜리 실험에 그칩니다.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직 전체의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리더의 재정의 — 연결점, 그리고 퍼실리테이터
이 흐름은 다른 데이터에서도 확인됩니다. 최근 발표된 한 글로벌 워크포스 트렌드 리포트는 2026년 조직에서 일선 리더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제 리더는 위에서 내려온 전략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과 고객, 경영진과 전략 사이를 잇는 '연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리자가 전략과 실행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시기 발표된 한 C-레벨 대상 조사는 다른 각도에서 이 지점을 확인해줍니다. 리더 3명 중 2명은 구성원들이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구성원 중 절반도 채 안 되는 이들만이 스스로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이 인식의 격차 앞에서, 리더 혼자 판단을 내리고 지시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판단을 잠시 멈추고 문제를 구성원과 함께 풀어가는 '퍼실리테이터'로서의 리더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이유입니다.
릴케의 질문과 지적겸손 — 리더의 재정의
리팸(re:Box Family)들이 리더십 교육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저항은 "내가 답을 모른다고 인정하면 리더십이 흔들리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지금 데이터와 현장 모두가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답을 쥔 리더가 아니라 질문을 살아내는 리더가 더 정확한 판단에 도달합니다.
이제 리더십 교육은 이 질문하는 태도를 리더 개인의 성찰로 그치게 두지 않습니다. 조직진단을 통해 구성원들이 실제로 질문하고 이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인지부터 짚고, 리박스에이전트로 리더의 회의 방식과 피드백 패턴 속에서 "다 안다"는 신호가 얼마나 반복되는지 데이터로 확인합니다. 그 위에서 리더십 교육은 질문하는 리더 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직의 관계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나는 회의에서 답을 먼저 내놓는 사람인가, 질문을 먼저 던지는 사람인가?: 성급한 정답이 오히려 더 나은 판단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내가 틀렸다,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우리 조직은 그것을 약함으로 받아들이는가, 신뢰로 받아들이는가?: 이 반응의 차이가 조직의 심리적 안전감 수준을 보여준다.
구성원들도 확신이 없을 때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리더 혼자만 겸손해지는 변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 줄 요약: 지금 시대의 리더십은 답을 쥐고 있는 확신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겸손과 호기심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변화는 리더 혼자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함께 걸어야 완성된다.
그래서 저는 이 컬럼을 "나의 리더십은 이렇게 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진짜 질문은 그 앞에 있습니다. 우리 조직의 올해, 그리고 내년 전략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 그 전략을 달성하는 데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도 비로소 보입니다. 그러니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 당신은 지금, 어떤 리더십이 필요합니까?
정태희 드림
이 컬럼이 참고한 자료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Satya Nadella의 "know-it-all에서 learn-it-all로"의 마이크로소프트 조직문화 전환 (2014년 CEO 취임사)
Forbes, "How Leaders Use Intellectual Humility As A Future-Proof Skill" (2026.05.28)
SUCCESS, "New Research: How to Get Better at Taking Feedback" (2026.07,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연구 인용)
London Business School, "What you need to do differently as a leader in 2026" (Nicos Savva 교수 기고, LBS Think Ahead, 2025.12.22)
Visier, "The Visier 2026 Trends Report" (2025.11, "일선 관리자가 전략과 실행을 잇는 다리가 될 것" 관련)
Padilla, "2026 C-suite Perspectives Study" (2026.2, 리더-구성원 변화 인식 격차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