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태희입니다.
뜨거운 여름이 갑작스러운 폭우와 함께 성큼 다가왔습니다.
지난 39일간의 축제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주말이 유독 행복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결국 월드컵이 보여준 대반전의 서사들 때문이었습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만이 줄 수 있는 그 긴장과 카타르시스 말입니다. 이번 컬럼은 조직 이야기 대신, 이번 월드컵이 보여준 장면들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결승선 앞에서 팀들이 보여준 모습이, 사실은 고성과 조직이 갖춰야 할 조건과 정확히 겹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팀의 대서사 — 아르헨티나의 '도파민 축구'
이번 대회에서 아르헨티나가 보여준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16강 이집트전, 8강 스위스전, 준결승 잉글랜드전까지 세 경기 연속 역전승. 특히 준결승에서는 후반 40분 엔소 페르난데스의 동점골과 추가시간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역전골로 잉글랜드를 2-1로 꺾었는데, 두 골 모두 39세 노장 리오넬 메시의 어시스트에서 나왔습니다. 경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판을 뒤집어버리는 이 패턴은 이번 대회 내내 반복됐습니다.
이 무대에 서기까지 메시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두고 "이게 내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도 우승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 대표팀 은퇴를 미뤘고,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대비해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MLS 인터 마이애미로 이적해 북중미 환경에 몸을 맞춰갔습니다. 대회 6개월 전까지 몸 상태를 지켜보고서야 출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4월 사실상 마지막 홈 고별전에서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다시 한번 그라운드에 서는 쪽을 택했습니다. 대회를 코앞에 두고는 허벅지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해지는 고비도 넘겼습니다. 그렇게 나선 이번 대회에서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기예르모 오초아와 함께 월드컵 최다 출전(6회) 타이기록을 세웠고, 조별리그부터 다득점을 몰아치며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넘어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 단독 1위에 올랐습니다.
젊은 시절 측면을 폭발적으로 돌파하던 드리블러에서, 지금은 결정적 순간 동료를 살리는 플레이메이커로 스스로를 개조해온 것도 이번 대회에서 두드러졌습니다. 그 변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시간을 공과 함께 보내며 다져온 오랜 연습이, 나이가 들며 스타일을 바꿔야 하는 순간에도 그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준 밑천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정답을 고집하는 대신, 승리를 위해 스스로의 역할을 다시 정의한 것입니다.
경기 중 10번 등번호의 메시를 유심히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무작정 돌진하는 대신, 판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부터 읽습니다. 그러다 걸어 다니듯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이 있고, 판이 열리는 찰나 갑자기 전력으로 질주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 순간도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조직도 다르지 않습니다. 완급을 조절하더라도, 정해진 기한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목표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됩니다. 이 완급 조절이야말로 진짜 리더의 역할과 닮아 있습니다. 리더 역시 무조건 앞서 돌진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흐름을 끊임없이 읽고, 멈출 때와 전력을 다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속도 그 자체보다, 언제 속도를 낼지를 아는 판단력이 진짜 실력입니다.
주목할 지점은 메시의 역할입니다. 이번 대회 그는 8골을 넣었지만, 대회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이 직접 골을 넣기보다 동료를 살리는 어시스트에 집중했습니다. 노장의 투혼이란 결국 혼자 다 해내려는 힘이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정확히 배달하는 판단력이라는 것을 그는 이번 대회에서 증명했습니다. 군림하며 자리를 지키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팀에 기여할지를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떨어진 다음이 진짜 실력이다 — 잉글랜드의 반등
잉글랜드는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짜릿하게 역전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대회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팀에게 3·4위전은 형식적인 경기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오히려 폭발했습니다. 득점왕 경쟁자였던 킬리안 음바페의 프랑스를 상대로 6-4라는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대회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인 음바페가 있는 팀도, 결승 진출 좌절이라는 실망을 딛고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린 팀 앞에서는 무너졌습니다.
이 장면이 조직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진짜 실력은 이겼을 때가 아니라, 큰 좌절 뒤 다음 경기에서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벨링엄의 환한 미소와 화려한 개인기를 유독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그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팀에 필요한 순간마다 제 몫을 끝까지 해냈습니다. 벨링엄을 비롯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결승 진출 실패라는 감정을 안고도 곧바로 다음 경기에 온전히 몰입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정신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좌절한 팀이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코칭 스태프의 환경 설계가 함께 작동한 결과입니다.
한끝 차이의 안정감 — 스페인의 무실점 조직력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승까지 올라온 팀이 있습니다. 스페인은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단 1실점만 허용했습니다. 화려한 스타 한 명의 개인기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미네 야말이라는 19세 신예의 재능이 주목받지만, 그 재능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실점하지 않는 조직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결승전에서 완성됐습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종료 직전 엔소 페르난데스가 경고 두 장으로 퇴장당하며 한 명이 모자란 채로 연장전을 버텨야 했고,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가 결승전 최다 세이브 신기록(11회)을 세우며 홀로 골문을 지켰지만, 연장 후반 초반인 106분 페란 토레스에게 끝내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볼 점유율 65%, 슈팅 20개를 기록한 반면 아르헨티나의 슈팅은 단 2개에 그쳤습니다. 메시조차 이 흐름을 끝내 뒤집지 못했습니다. 강력하고 진화된 티키타카로 무장한 스페인의 조직력 앞에서는, 대회 최고의 개인 서사도 결국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페인은 이로써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통틀어 단 1실점만 내주며 대회를 마쳤습니다 — 무실점 조직력이라는 이 이야기의 주제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완성해 보인 셈입니다.
어쩌면 이 뜨거운 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으로 메시 같은 절대적 영웅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끝내 승자가 된 것은 탄탄한 전략 아래 진화된 티키타카를 완성한 조직력, 그리고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무실점의 스페인이었습니다.
고성과 팀의 특징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화려한 개인기와 흔들리지 않는 조직력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두 축입니다. 한끝 차이의 승부에서 결국 살아남는 것은 스타 한 명이 아니라, 그 스타가 실수해도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을 경기 내내 유지하게 만드는 조직 전체의 안정감입니다.
리더의 역할 재정의: 인재를 관리한다 하지 말고, 인재가 마음껏 뛸 환경과 무대를 만들어라
이번 대회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사실 경기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3·4위전이 끝난 뒤 잉글랜드의 시상식에 앞서, 다섯 명의 심판에게 먼저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결과와 무관하게 대회의 공정을 끝까지 지켜준 이들에게 정당한 예우를 갖추는 마무리 모습도 보기에 좋았습니다. 좋은 조직은 인재 한 명 한 명을 관리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인재가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관리합니다. 메시가 어시스트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받쳐줄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잉글랜드가 좌절 뒤에도 재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회복을 가능케 하는 팀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며, 스페인이 무실점으로 결승까지 온 것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이 실점을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기량을 발휘하는 것과, 그 기량이 실제 승리로 연결되도록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일입니다. 후자를 만드는 것이 바로 리더와 조직의 몫입니다. 선수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약속한 날짜까지 이루기로 한 목표 달성에 매진해야 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도록, 선수가 자신의 포지션에 집중하며 거침없이 돌진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데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데 급급함이 아니라 고수들의 이면의 배울점을 찾아 다음 경기를 준비합니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사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관찰이 저 혼자만의 해석은 아닙니다. 최근 석 달 사이 나온 글로벌 컨설팅사들의 리포트들을 읽어보면 정확히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맥킨지는 지난 4월, 제가 평소 좋아하는 하버드경영대학원 린다 힐 교수와의 대담에서 혁신이 멈추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제 성과로 옮길 신뢰와 문화, 협업 구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아이디어를 낸 개인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자라날 수 있는 조직적 토양이 혁신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발표된 또 다른 맥킨지 아티클은 더 직설적입니다. "AI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그걸 쓰는 사람의 두뇌에는 얼마나 투자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도구에 대한 투자만큼 그 도구를 쓰는 사람과 환경에 대한 투자가 없다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 시원한 팩폭입니다.
앞서 3월 발표된 BCG의 글로벌 HR 리더십 리포트(전 세계 7천 명 이상의 HR·비즈니스 리더 대상 조사)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HR 리더의 절반 이상이 행정 업무 부담 때문에 정작 전략적으로 조직에 기여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뛰어난 인재를 뽑는 일보다, 그 인재가 실제로 전략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훨씬 더 방치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메시의 어시스트, 스페인의 무실점 조직력, 잉글랜드의 재집중력 — 이번 월드컵이 보여준 장면들과 글로벌 컨설팅사들이 지금 강조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만납니다. 재능은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 재능이 성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환경을 누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입니다. 외부 전문가와 내부 리더가 힘을 합쳐, 바로 이 환경 설계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리박스컨설팅의 틀을 깨는 인사 컨설팅 시사점
re:BOX가 조직진단과 리더십교육에서 최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뛰어난 인재를 뽑고 관리하는 데 집중하는 조직과, 그 인재가 기량을 발휘할 환경을 설계하는 조직은 성과가 다릅니다. 개인의 성과 지표만 보는 인사관리는 스타 한 명에게 조직 전체를 의존하게 만들지만, 환경관리는 그 스타의 재능이 팀 전체의 승리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듭니다.
리박스 컨설턴트들이 조직의 회의 방식, 목표 달성률, 협업 패턴을 데이터로 짚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 평가를 넘어, 그 역량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선수를 모으는 것과, 좋은 선수들이 이기는 팀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 우리 조직은 스타 플레이어 한 명에게 승부를 의존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가 실수해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개인기와 조직력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두 축이다.
- 큰 실패 직후, 우리 팀은 다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는가?
좌절 뒤의 회복력은 개인의 정신력이 아니라 조직이 설계하는 문화에서 나온다.
- 나는 인재를 관리하고 있는가, 인재가 일하게 하는 환경을 관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조직의 성과 상한선을 결정한다.
한 줄 요약: 고성과 조직은 뛰어난 개인을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개인이 흔들리지 않고 기량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환경, 그리고 그 기량이 승리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시스템이 진짜 경쟁력이다.
매주 주말에 읽은 책, 대화, 서사, 아티클,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제 글을 쓰고 있고 여러분 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리박스컨설팅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Don'
t forget Argentina처럼 비가 주룩주룩 오는 월요일 아침, 이번 한 주도 화이팅하세요!
정태희 대표 드림
이 컬럼이 참고한 자료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 스페인 1-0 아르헨티나(연장전, 페란 토레스 106분 결승골, 아르헨티나 엔소 페르난데스 퇴장, 마르티네스 11세이브 결승전 최다 기록) (2026.7.19)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준결승 아르헨티나 2-1 잉글랜드 (2026.7.16, 메시 2도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준결승 스페인 2-0 프랑스 (2026.7.14)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3·4위전 잉글랜드 6-4 프랑스 (2026.7.19)
스페인, 대회 전체(조별리그~결승) 1실점 기록 (2026 FIFA 월드컵 공식 통계)
스포츠경향, "'축구의 신'을 4년 뒤 월드컵서 볼 희망…'39세 생일' 메시 '하루하루 충실, 팀에 기여한다면 당분간'" (2026.6.25경, 월드컵 최다 득점 단독 1위 등극 관련)
메시의 대표팀 은퇴 보류 및 인터 마이애미 이적, 2026 월드컵 출전 결정 과정 관련 다수 매체 보도 (2024~2026)
McKinsey & Company, "What it takes to build 'genius at scale'" (Linda Hill 인터뷰, 2026.4.29)
McKinsey & Company, "Five principles for designing brain-powered organizations" (2026.7.13)
BCG · WFPMA, "Creating People Advantage 2026: Four Power Moves for the CHRO" (2026.3.17, 전 세계 7,000명 이상 HR·비즈니스 리더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