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태희입니다.
지난번 칼럼의 축구 그리고 닐케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었다고 반응을 해주시어 조금 용기가 납니다.
오늘은 좀 더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지나치게 과업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직생활 시절 늘 제 보스는 저를 매우 아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 가장 큰 취약성은, 쉼을 스스로 선택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박스를 운영하면서 리팸(동료)들과 함께 안식 휴가는 매우 중요한 우리 조직문화임을 강조합니다. 저에게는 유독 낯설었지만, 리더로서 가장 필요한 시간과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낯섦에서 출발해, 최고의 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돌진하지 않는 자가 살아남는다 — 동물의 왕국이 알려주는 강자의 정의
저는 동물의 왕국과 스포츠를 즐겨봅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세계에는 너무나 투명하고 명확한 일관성, 그리고 공정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왜곡할 변명이 없습니다. 휴식을 하면서 자연스레 좋아하는 프로를 돌려봅니다.
동물의 세계 속 사냥의 최강자로 불리는 사자나 하이에나를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이들은 절대로 무작정 먹잇감에게 달려들지 않습니다. 멈추고, 빠지고, 다시 관찰합니다. 특히 하이에나는 사냥할 때 상대의 가장 취약한 급소를 정확히 겨냥합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그 상황에서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 어디인지부터 읽는 것입니다. 강자의 정의는 여기서 갈립니다. 가장 빠르거나 가장 힘이 센 존재가 아니라, 그 상황의 판을 가장 정확히 읽어내는 존재가 진짜 강자입니다. 늘 옳다고 믿는 자신의 확신이 어쩌면 리더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철옹성 같은 경영진을 무너뜨린 것은 힘이 아니라 설계였다
지난주, 휴가를 떠나기 전 마지막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매우 크고 잘나가는 대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였습니다. 담당자는 시작 전부터 내내 걱정이 컸습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움이 컸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임원진은 철옹성 같다고 알려져 있었고, 워낙 보수적인 조직문화였기에 더더욱 이런 워크숍이 과연 통할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문제는 경영진이 아니었습니다. 명확한 논리와 근거,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메타인지를 자극하는 질문들로 설계된 워크숍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납득할 수밖에 없는 틈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집요하게 그 틈을 공략하는 설계였느냐, 아니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워크숍이 끝난 뒤 모두가 그 순간을 성공적인 변화관리의 모멘트로 인정했습니다. 강연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이에나가 아무 곳이나 물어뜯지 않듯, 조직을 움직이는 것도 무작정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인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는 설계였습니다.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어디에 진짜 문제가 존재하는지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강자는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 안식 휴가에서 다시 배운 것
이 워크숍이 끝난 직후, 저는 곧바로 안식 휴가에 들어갔습니다. 판을 읽고 정확히 급소를 공략하는 것도 강자의 조건이지만,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것 역시 같은 조건이라는 걸 이번에 다시 배웠습니다. 사자도 사냥에 성공한 뒤에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습니다.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는 맹수는 없습니다. 사실 매달 컨설턴트들의 급여를 마련해야 하는 대표로서의 부담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쉼은 그 어떤 복지보다도 위대함을 알기에, 더 강력한 리박스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서더라고요. 제가 아는 어떤 대표는 안식 휴가 때만은 회사의 시스템을 완전히 꺼놓으라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쉼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공하는 대상 역시 그만한 기여를 했고 그에 대한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글로벌 HR 동향은 이 주제에 어떤지 찾아보았습니다. 최근 한 매체는 고성과자를 잃는 가장 큰 이유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는 조직문화에 있다고 짚으며, 안식 휴가를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핵심 인재를 지키는 전략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커리어 전문가는 잘 설계된 안식 휴가에서 돌아온 리더는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날카로운 사고와 회복된 판단력을 갖고 돌아온다고 강조합니다. 쉬지 못한 채 소진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커리어에 훨씬 더 큰 리스크라는 것입니다.
멈춤은 리더만의 몫이 아니다 — 팔로워의 숨고르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완급을 조절하고 판을 읽는 일이 리더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 역시 그냥 맹렬히 달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끔은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쏟고 있는 노력이 리더의 전략과 제대로 정렬되어 있는지 숨을 고르며 점검해야 합니다. 방향을 잃은 채 열심히 달리기만 하는 것은, 열심이 아니라 공회전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구성원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 영향력을 발휘해야 인정을 받는다.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조직의 방향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릅니다. 정렬되지 않은 채 달리기만 하는 구성원의 노력은 아무리 애써도 조직 안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강자의 조건은 리더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팔로워에게도 똑같이 판을 읽고, 정렬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멈출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바쁠 때 리더는 반드시 실수한다 — 나만의 커렌시아를 찾아라
리더는 바쁠 때 꼭 실수를 합니다. 저 역시 늘 바쁘고 지쳐 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돌아보면 대부분은 제 의도와는 무관했습니다. 무심코 헛나간 말 한마디, 조절 안되는 표정들, 혹은 "알아서 이해해주겠지" 하고 넘어간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상대는 이미 전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유가 없을 때, 리더는 관계도 판단도 함께 놓칩니다.
전 링크드인 CEO 제프 와이너는 이 문제를 하루 일정 속에 20분씩 의도적으로 비워둔 빈칸으로 해결했다고 합니다. 다음 일로 곧장 넘어가는 대신, 그 빈 시간 속에서 방금 있었던 일을 소화하고 다음을 여유 있게 생각할 여지를 스스로에게 준 것입니다. 그는 이 습관을 자신만의 '커렌시아(querencia)'라고 불렀습니다. 커렌시아는 본래 투우장에서 소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며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를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쫓기던 소가 그 자리에 서는 순간 다시 힘을 모으듯, 사람에게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숨을 고르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저에게도 저만의 커렌시아가 있습니다. 오래전 남편과 맺은 약속인데, 바로 저의 서재입니다. 이 방 안에 들어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책을 편식하듯 골라 읽는 것이 제 유일한 낙입니다. 대단한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하루 20분이든, 방 한 칸이든, 온전히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자리 하나면 충분합니다. 성수동 리박스 사무실에 오시면 침묵 라운지가 있습니다. 그 라운지에서는 아무도 말을 시킬 수 없습니다 — 혼자 있고 싶다는 무언의 약속인 셈이지요.
요즘 글로벌 컨설팅사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관찰이 저 혼자만의 해석은 아니더라고요. 지난 3월 말 맥킨지가 발표한 아티클은 팀의 의사결정을 망치는 여섯 가지 함정을 짚으며, 기술적 판단만으로는 부족하고 안목과 분별력, 그리고 인간적 역학을 통합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속도와 데이터만으로는 좋은 결정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소개해 널리 알려진 '치타의 멈춤(cheetah pause)'이라는 개념도 정확히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치타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지만, 사냥감을 발견하면 전력 질주 직전 반드시 속도를 늦추고 정확히 관찰하는 순간을 거칩니다. 무작정 질주하는 대신 전략적으로 멈추는 그 짧은 순간이, 결국 사냥의 성공률을 가릅니다. 조직의 의사결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멈춤은 느림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질주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결국 가장 강한 리더는, 끝까지 살아남은 리더입니다
리박스컨설팅의 틀을 깨는 인사 컨설팅 시사점
re:BOX가 조직진단과 리더십교육을 설계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개입'입니다. 철옹성 같은 경영진을 만났을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설득이 아니라, 그 조직에서 가장 결정적인 틈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읽어내는 진단입니다. 리박스컨설턴트들이 회의 방식과 의사결정 패턴, 조직 데이터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급소를 모르면 아무리 세게 밀어붙여도 조직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동시에 re:BOX는 리더십교육에서 '멈추는 법'도 함께 다룹니다. 판을 읽는 능력과 멈출 줄 아는 능력은 따로 떨어진 역량이 아니라 같은 근육에서 나옵니다. 이는 리더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구성원 역시 자신의 노력이 조직의 방향과 정렬되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줄 알아야 진짜 영향력을 만들어냅니다. 쉼 없이 돌진하기만 하는 조직은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판을 잘못 읽습니다.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전 체크포인트
- 나는 문제 앞에서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는가, 아니면 가장 결정적인 지점부터 읽는가?: 강자의 조건은 속도나 힘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력에 있다.
- 우리 조직의 개입과 설득은 급소를 겨냥하고 있는가, 아니면 넓게 흩어져 있는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정밀한 설계가 막연한 압박보다 훨씬 강하다.
- 나는, 그리고 우리 구성원은 멈출 줄 아는가?: 방향 점검 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소진과 공회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 줄 요약: 진짜 강자는 가장 빠르거나 가장 힘이 센 존재가 아니라, 판을 정확히 읽고 결정적인 순간을 겨냥하며, 필요할 때 멈출 줄 아는 존재다. 그리고 이 조건은 리더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번 컬럼을 끝으로 저도 잠시 멈추어 안식 휴가를 온전히 누려보려 합니다. 다녀와서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휴가 때 읽어보려고 사둔 책들만 봐도 마음이 너무나 설렙니다. 여러분도 조금이라도 잠시 멈추시고 더 멋진 전진을 설계해 보셔요. 이번 한여름,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태희 드림
이 컬럼이 참고한 자료
McKinsey & Company, "Six traps that sabotage your team's decision making" (2026.3.30)
Employee Benefit News, "The benefits that retain high performers, part 2" (2026.7.21)
Laura Nguyen Co, "The Strategic Career Sabbatical: A 2026 Guide for Executives Who Need a Real Reset" (2026.5.19)
Harvard Business Review 소개 '치타의 멈춤(cheetah pause)' 의사결정 개념 (McKinsey 리더십 뉴스레터 인용)
제프 와이너(전 링크드인 CEO)의 '커렌시아(querencia)' 시간 관리 습관 관련 다수 매체 보도